사실 이 책을 읽은 지는 약 3~4개월 정도 지났는데, 정리를 미루다가 늦게나마 책 리뷰를 써봅니다.
책 제목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얼핏 들으면 무언가 따뜻한 느낌이 전해져오는, 감성적인 느낌을 주는 제목인데요. 책 내용은 제목과는 전혀 다르게 경제학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반적인 느낌도 따뜻하다기 보다는 거침없는 근대 경제학(그 당시에는 현대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이 많이 있어서 날카로운 면이 있어요.
책을 제가 읽고 난 뒤 시간이 몇 개월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떠오르는 몇 가지 대목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경제학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이 책이 쓰여진 시대는 약 160년 전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활발하게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던 시대였고, “경제학”이라는 게 정의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함으로써, 개인은 더 자주, 더 효율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다.
즉, 애덤 스미스는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모두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도 더 경제적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저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얼핏 이런 내용을 배웠던 것 같은 기억이 있어서 딱히 이 관점이 틀렸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사실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존 러스킨은 다른 주장을 내놓습니다. 경제학에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뭔 말인가 싶은데..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서로 다른 회사에 다니는 A와 B가 있습니다. A의 회사에서는 직원을 쥐어짭니다. 월급은 최대한 낮게 주면서 일은 많이 시킵니다. 월급이 너무 낮다고 불평하면, 다른 사람으로 갈아치웁니다. 그게 회사 입장에서는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하니까요. B의 회사는 하는 일 대비 합당한 월급을 지급합니다. 각종 복지도 잘 되어있어서 저절로 애사심, 자부심이 뿜뿜합니다. 직원 입장에서 어떤 회사에서 일이 잘 될까요? 당연히 B의 회사겠죠.
A는 수동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습니다. 회사를 미워하니까요. 주말에 쉬면서 일에 관해 좋은 아이디어가 저절로 나지도 않을 것이고 어쩌다가 난다고 해도, 절대 얘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회사가 잘 되길 바라지 않으니까요. 반대로 B는 시키지 않아도 쉬는 시간에도 일을 잘 해낼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실제로 실행해 볼 겁니다. 회사가 잘 됐으면 좋겠으니까요. “애사심”이라는 건 사실 회사에 대한 사랑인거죠. 네, 사랑이 필요합니다.
경제학의 모든 주체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고, 인간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을때 경제학적으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죠. 만약 기계라면 “가성비”를 따져서 싸면서도 효율 좋은 기계를 구입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되겠죠.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상인의 직분은 국민에게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상인, 혹은 장사꾼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시나요? 어떤 숭고하거나 고결한, 충성심 높은 그런 이미지는 아닐 겁니다. 저도 그렇지만 대체로, 탐욕스러운 이미지가 많이 그려지고요. 실제로도 가격 정찰제가 잘 안되어있는 곳에서 무언가를 구매할 때 호갱 되어본 적 다들 한 번 쯤은 있을 거에요.
우리가 성당의 신부, 군인을 떠올릴 때는 이렇게 탐욕스러운 이미지는 아닐거에요. 왜냐면 그들이 행동하는 동기는 돈 말고도 많은 것들이 있다고 우리가 믿기 때문이죠. 하지만 상인은? 상인에 대해서 떠올릴 때 우리가 돈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는 없을 거에요. 실제로 많은 상인들이 돈과 이해득실만을 따져서 행동하는 것도 사실이지만요.
하지만 분명히 상인이라는 직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사회에 존재하겠죠. 현대 사회에서 상인의 역할은 사실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제조나 유통입니다. 그러니까 존 러스킨은 돈은 내려놓고, 원래 그들이 사회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뭔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자는 거죠. 존 러스킨은 상인들에게도 그 역할, 소명, 직분을 잊지 말고 이해득실에 따라 행동할 것이 아니라 맡은 역할에 따라 행동하기를 촉구하는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로 일을 하면서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업의 소명(직분)이 뭔지 다시 고민해본 뒤, 그 소명에 따라 행동하는 게 존 러스킨의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더 “경제적”인 게 되지 않을까요?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 값이 많이 비싸졌죠. 보이지 않는 손을 떠올리며, “공급은 그대로인데 수요가 폭발적으로 올랐으니 값이 비싸지는 건 당연한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게 무척 당연합니다. 하지만 존 러스킨의 관점에서는 당연하지 않을 것 같아요. 사실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데 드는 원가는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원자재의 가격이 오르지 않았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원자재 가격 또한 단순히 수요 상승으로 인한 가격 상승이니 마찬가지의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상인의 소명이 “국민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공급하는 것”이라면, 이 관점에서 마스크의 원자재든, 마스크 그 자체이든, 과연 가격이 올라야 할 합당할 이유가 있을까요? 모든 상인들이 이런 위기 때도 자신의 직업적 소명을 중시해 평소와 같은 가격으로 공급한다면, 국민들에게 상인에 대한 존경심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요?
제대로 소비하지 못하는 부는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 부자는 일반적으로 그냥 “돈이 많은 사람”으로 정의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부자를 부러워하고요. 그런데, 부자이지만 병환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도 부러워 하시나요? 그보다는 그 많은 유산을 물려받을 상속자를 부러워 하시겠죠. 이렇게, 단순히 돈이 많은 것보다는 그 돈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존 러스킨은 그래서 부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합니다. “부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물건에 대한 소유 상태를 뜻한다.” 즉, 모든 부는 사용해야만 의미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비단 죽기 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종종 마주치는 것 같아요. 무한리필뷔페에서 내가 먹을 양보다 많이 가져온 음식, 충동적으로 구매해놓고 한 번도 메지 않았던 가방, 사놓고 귀찮아서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책 등등.. (네, 모두 제 얘기에요 💦) 이렇게 비효율적인 소비를 계속하는 것은 각 개인의 경제 상황에도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사회의 경제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겠죠.
이런 관점에서 저는 각 개인이 재화를 “제대로” 소비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사회 전체의 부가 증가할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이런 관점에서 재화를 제대로 소비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캠페인이 IMF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의 일환이었던 아나바다 운동이죠. 아나바다 운동을 벌인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이 캠페인이 성공적으로 잘 정착한다면 사회 전체 부의 증가로 이어질 거라고 믿어요. 물건을 많이 팔아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악재겠지만요.
마치며
이 책은 간디의 인생을 완전히 바꾼 책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국내의 많은 기업가 분들이 추천하시는 책이기도 하고요. 저도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해서 오래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읽어보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정리를 했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게 사실이라서 원저자의 의도와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잘못 해석한 부분도 있을 수 있고요.) 여러분들이 책을 직접 읽으시면서 떠오른 생각을 스스로 정리 해보시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위의 내용이 당연히 전부가 아니고 더 좋은 내용들이 많고, 느껴지는 부분도 많으니까요. 다들 꼭 한 번 쯤은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